중국 문명이 최고였음에도 중국의 전통과학이 과학혁명을 왜 이루지 못했느냐고 질문할 때 생기는 문제-이미 방해요인에 집중시켜 상호간의 진정한 과정과 차이를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을 둘러보는 김영식,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 박민아, 김영식 편, ‘프리즘: 역사로 과학을 읽다'(서울대 출판부, 2007). 흔히 ‘why not?’ 질문이라고 하는 문제, 즉 ‘왜 중국에서는(혹은 한국에서는) 그 뛰어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도 그러한 문제 중 하나이다. 중국 과학사 연구 초기 제기된 이 질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 전통의 자연관과 기술적 성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적 견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김영식의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은 중국 과학사 연구에서 ‘Why not?’ 질문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재고찰하는 글이다. 김영식은 이 질문을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것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 과학사 연구에 유의미한, 즉 중국 과학사 연구에서 가치 있는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을 둘러보는 김영식,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 박민아, 김영식 편, ‘프리즘: 역사로 과학을 읽다'(서울대 출판부, 2007). 흔히 ‘why not?’ 질문이라고 하는 문제, 즉 ‘왜 중국에서는(혹은 한국에서는) 그 뛰어난 문명에도 불구하고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도 그러한 문제 중 하나이다. 중국 과학사 연구 초기 제기된 이 질문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중국 전통의 자연관과 기술적 성취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기능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은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서구중심주의적 견해로 인해 많은 비판을 받아 왔다. 김영식의 ‘중국 과학에서의 Why 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은 중국 과학사 연구에서 ‘Why not?’ 질문이 갖는 의미와 역할을 재고찰하는 글이다. 김영식은 이 질문을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서 분석하고 그것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국 과학사 연구에 유의미한, 즉 중국 과학사 연구에서 가치 있는 성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문제의식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목차 1본문 1.11. 헤더 : why not 질문의 다양한 형태 1.22. why not 질문의 대상 1.33. 질문이 안고 있는 문제점 1.3.13.1 질문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질문이 함축하고 있는 각 가정의 ‘why E’=’why not (not E)’ 1·3·33·3·3·3·3·1 과학혁명이라는 사건이 갖는 특징, 왜 정체되어 있는지, 또는 ’14’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했을까? why not 질문의 공헌 1.66. 리뷰: 한국판 why not 질문 1.7 주석 1.8 참고문헌 1.8.1 동양서 1.8.2 서양서 2 관련 항목 목차 1본문 1 .11 . 헤더: why not 질문의 다양한 형태 1 .22 . why not 질문의 대상1 .33 . 질문이 안고 있는 문제점1 .3 .13.1 질문 자체가 안고 있는 문제점과 질문이 함축하고 있는 각 가정의 “why E” = “why not (not E)”1 , 3 , 33 , 3 , 3 , 3 , 3 , 3 , 3 · 3 ·. why not 질문의 공헌 1.66. 리뷰: 한국판 why not 질문 1.7 주석 1.8 참고문헌 1.8.1 동양서 1.8.2 서양서 2 관련 항목

본문 중국과학에서의 Why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의 김영식, 안기택 옮김 1. 두어: why not 질문의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중국의 과학과 자연철학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why not 질문이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든가 ‘왜 중국에서는 독자적으로 근대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는가?’라는 형태로 제기되는 질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끔 우연히 사람들에게 내 전공이 중국 과학사라고 말할 때마다: 그 사람들이 내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why not의 질문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굴복할 당시 살았던 중국인들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서구와 같은 과학과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자강, 부강을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자신들이 과학과 기술을 아예 발전시키지 못했는지 의문을 품게 됐다.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why not의 질문을 훨씬 극단적인 형태로 제기하기도 했다. 펑유란이 왜 중국에는 과학이 없을까라는 논문을 쓴 경우가 그 예라고 할 수 있다. [1]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중국에도 서양 못지않은 세련된 고도의 과학, 기술의 전통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다양한 모습으로 변형된 whynot 질문이 등장하게 됐다. 중국 과학 성취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 변화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인물인 조셉 니덤(Joseph Needham)의 경우 “왜 중국은 1400년 동안이나 많은 면에서 유럽보다 앞섰음에도 스스로 근대 과학을 이루지 못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2]모습을 바꾼 why not의 질문은 그 밖에도 많이 있고 그 중 몇몇은 상당히 흥미롭기도 하다. 몇몇 학자는 중국의 과학 활동이 단절되고 널리 확산되지도 못한 이유에 대해 보다 구체적인 물음을 던졌다. 철학자인 로버트 코헨(Robert S. Cohen)의 경우가 한 예인데, 그는 “중국은 지극히 세련되고 자랑스러운 과학 전통을 발달시켜 근대적인 과학, 기술의 문턱에까지 도달했지만 그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왜 못했느냐고 물었다. [3] 철학자 아놀드 코스로(Arnold Koslow)가 제시한 물음은 “고대 및 중세 중국에서 상당 수준에 달했던 광학(optics), 음향학(acoustics), 수학(mathematics)과 같은 분야의 전통은 왜 연결되지 않고 단절되었을까?”였다. [4] 과학혁명의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플로리스 코헨(H. Floris Cohen)은 “갈릴레오 같은 사람이 중국에 출현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그의 주장이 널리 받아들여졌겠느냐고 물었다. [5] 간혹 이 질문에 잠정적인 답이 why not 질문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즉, “왜 과학 활동은 유럽에서만 기능적으로 분화되고 제도화되어 중국이나 그 밖의 곳에서는 할 수 없었는가?” [6] 아마도 가장 중립적이지만 그다지 흥미롭지는 않은 형태는 내가 제기한 질문인 “왜 중국인들은 자연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지식을 그들이 하나의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유럽인들이 근대과학을 발전시킨 형태로는 발전시키지 않았는가”[7]일 것이다. 이 논문에서는 why not의 질문을 다시 묻고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기보다는 그 질문을 묻고 답하는 행위에 수반되는 이론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문제점을 검토해 볼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다양한 비판을 살펴보고 그러한 비판의 타당성을 고찰한다. 나는 여기서 소개한 why not 질문을 ‘왜 A 문화권에서 E라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는 일반적인 질문의 한 예로 간주하고, 특정 사건 E와 문화권 A가 가진 구체적인 특징이 사람들이 그 질문을 다루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줄 것이다. 문제점은 질문뿐 아니라 사람들이 찾고 발견한 답에도 있다. 나는 그런 문제점도 함께 고찰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 질문과 대답이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용했고,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유용했는지 살펴볼 것이다. 참고로 나는 ‘한국판 whynot 질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질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 논문을 정리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나의 목적은 why not 질문을 무심코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려는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와이낫의 질문이 갖는 잠재적인 문제점이 널리 인식되면서 중국 과학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것을 꺼리게 됐다. 이제 때때로 그 질문의 정당성을 고찰하고 결국은 그것을 토론하는 데 정당하지 않은 질문으로 결론짓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문적인 토론의 장에서 누구도 그런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것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안타깝게도 결국 why not의 질문을 던지고 그에 따른 위험을 다루기에 가장 적합한 자격을 가진 전문 과학사학자들이 더 이상 그 질문을 던지지 않는 가운데 전문성이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2. why not 질문의 대상, 우리가 why not 질문에 대해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그것을 아무런 문화권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와이낫의 질문을 제기하는 경우라면 보통 ①해당 문화권의 과학이 과학혁명에 매우 근접해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과학혁명으로 넘어가는 ‘문턱’을 넘지는 못했을 때라든가 ②해당 문화권의 다른 영역이 매우 진보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왜 그 과학은 그렇게 발달하지 못했는지 궁금해 할 때에 해당한다. 사실 중국 인도 이슬람 이외의 문화권에 대해서는 이처럼 스케일이 큰 질문이 제기되는 일은 없다. 한편 중국에 대해서는 와이낫의 질문이 매우 자주 제기된다.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중국은 위의 두 기준에 확실히 본문 중국과학에서의 Whynot 질문 과학혁명과 중국 전통과학의 김영식, 안기택 옮김 1. 두어: why not 질문의 여러 형태의 사람들이 중국의 과학과 자연철학에 대해 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why not 질문이다. 그것은 ‘중국에서는 왜 과학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는가?’라든가 ‘왜 중국에서는 독자적으로 근대과학이 발달하지 않았는가?’라는 형태로 제기되는 질문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끔 우연히 사람들에게 내 전공이 중국 과학사라고 말할 때마다: 그 사람들이 내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why not의 질문을 가장 먼저 제기한 것은 19세기 말20세기 초 중국이 서구 제국주의에 굴복할 당시 살았던 중국인들이었다. 당시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제국주의자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서구와 같은 과학과 기술을 스스로 발전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많은 중국인들이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자강, 부강을 이루려고 노력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자신들이 과학과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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